영화 서울의 봄을 보면 또 한 편의 좋은 영화가 나왔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동시에 화가 치밀어 오른다. 악역이나 비열하고 야비한 인물을 보며 울분이 터진다. 그만큼 배우들의 연기가 뛰어났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서울의 봄은 1979년 12. 12 군사반란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현대사를 다룬 영화로 그 당시 주요 인물들은 이제 이 세상에 없다. 우리가 MZ라고 부르는 세대는 어쩌면 이 사건에 대해 잘 모를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화가 치밀어 오르는 이유가 젊은 세대와 40~50십대 이후 세대가 다를 수 있다. 세대를 관통하는 그 무엇이 있기에 이 영화가 well made이다.
영화는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에 의해 18년간 장기 집권하던 박정희 시대가 끝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후 계엄하에서 계엄사령관 정상호는( 당시 계엄사령관 정승화를 극화한 인물이다. 배우 이성민이 맡았다.) 당시 보안사령관 전두광을 ( 전두환을 극화한 인물이다. 황정민이 이 역을 맡았다.)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한다. 여기서부터 문제의 발단이 시작된다. 당시 보안사령관이던 전두광은 검찰과 경찰 정보까지 모두 장악하고 있었는데, 박정희 암살 수사본부장을 맡아 다수의 사람들을 잡아 가두고 심문한다. 또한 전두광은 그 당시 박정희의 비호하에 육사 11기를 주축으로 하나회라는 군내 사조직을 두고 있었다.
전두광의 횡포가 심해지자 위기를 느낀 계엄사령관 정상호는 이태신 소장( 정우성이 이 역을 맡았다.) 에게 수경사를 맡긴다. 이태신 소장은 정치에 관심이 없고 올곧은 인물로 묘사된다. 전두광과 대립각을 세우는 인물이 바로 이태신이다.
전두광은 계엄사령관 정상호가 자신을 한직으로 내몬다는 정보를 받고 하나회를 중심으로 군사 쿠데타를 도모 한다. 이것이 대의명분이 있으면 지지를 받겠지만 개인의 야욕을 위한 것이라 국민의 지지가 있을 리가 없다. 그래서 전두광은 대통령의 재가를 받고 정상호를 박정희 암살과 관련 있는 인물로 체포하려 한다. 이에 물리적 충돌이 일어나고 무능한 군 수뇌부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 속에서 이태신 소장이 극에 중심에 놓이게 된다. 12월 12일 저녁 7시부터 새벽 4시까지의 9시간의 기록을 이 영화는 생동감 있게 보여준다.
공수혁 특전사령관(정만식), 김준엽 육군본부 헌병감(김성균)과 함께 이태신 수경사령관은 전두광 반란군이 수도 서울을 장악하지 못하게 진압군을 서울로 먼저 들이려 하지만 점조직으로 퍼져있는 하나회 조직과 기회주의적이고 우유뷰단한 군장군들의 반대로 반란군이 서울을 장악하게 된다. 이때 전두광은 최전선 부대도 서울로 투입시킨다. 자신의 욕망이 나라 전체의 안위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다.
이태신 소장은 그 끝을 알지만 포기하지 않고 소수의 병력을 이끌고 전두광을 체포하러 간다. 전두광은 질서와 법을 무너뜨리고 명분 없이 개인의 야욕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전두광은 결국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다.
전두광이란 인물은 권모술수에 능하고, 자신의 주변 사람을 카리스마 있게 리드하는 리더의 모습을 보여준다. 성공에 대한 강한 욕망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지 못하면 이 세상은 타도의 대상이다.
이 영화는 역사의 발전/진행을 정반합의 원리로 잘 보여주고 있다. 전두광이 일으킨 군사반란이 하나의 합을 만들고 이 합이 다시 정반합으로 이어져 오늘에 이른다. 정반합에서 반은 반드시 나쁘거나 좋은 것으로 정해져 있지 않다. 그 시대와 후대가 판가름할 뿐이다. 전두광이 우리에게 울분을 터뜨리게 하는 이유는 명분 없이 개인의 욕심만을 채우기 위해 변화를 주도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개봉이 깨우쳐 준 두 가지 사실이 있다. 하나는, 자신의 관심과 이익 외에는 잘 반응하지 않던 젊은 세대가 분노로 반응을 했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도 사회 정의는 살아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정의감이 있지만 이 시대가 너무 혼탁하고 진실을 가리는 시대라는 생각이 이제는 더 지배적이게 되었다. 어쩌면 정의에 목말라 있던 젊은 세대에 안타까운 연민이 든다.
또 하나의 발견은 바로 배우 정우성이다. 황정민은 워낙 연기파 배우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정우성은 연기파 배우라는 타이틀과는 거리가 좀 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자신에게 아주 잘 맞는 옷을 입은 느낌이다. 강직하면서도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동시에 아내와 주변인에 대한 애정을 품고 있는 인물을 너무 잘 표현했다.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빨리 보기를 추천한다. 영화의 스포일러는 없다. 우리의 현대사를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에 어느 관람객이나 끝을 알고 보는 영화다. 그럼에도 몰입은 정말 최강이다. 주연, 조연을 막론하고 모두가 실제 인물이 되어 생동감 있으면서도 극적인 연기를 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