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의 굴레 안에서 우리는 저 너머를 보지 못 한다.

우리 애가 집중을 못 한다고 하길래, 그럼 스마트폰 인터넷을 차단하라고 한 적이 있다. 그때 상대방의 대답은 나의 머리를 망치로 치는 듯한 느낌을 줬다. “그럼 뭐 하고 놀아요? 너무 할 게 없잖아요?” 이 말이 계속 머리를 맴돌았고, 왜 이런 대답을 했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맞다. 우리는 new normal 뉴노멀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눈떠서 자는 순간까지 스마트폰이 우리 삶의 일부가 돼버린 시대다. 이제 스마트폰 없는 삶을 상상하기가 좀 어려워진 것이다. 스마트폰이 세상에 나온 것이 불과 15년 정도인데, 우리의 삶을 너무 빨리 바꿔버린 듯하다.

심심하면 나가서 친구들과 놀고, 놀 친구가 없으면 책을 보던 만화를 보던 또는 운동을 하던지 그것도 아니면 멍이라도 때리면 된다. (우리 뇌는 항상 의식적으로 집중할 수는 없다. 멍하니 있지만 뇌는 작동하고 있다.)

스마트폰이 있어야 되고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포털 사이트를 여기저기 봐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상상력은 끝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스마트폰은 이런 인간의 상상력을 규제한다. 스마트폰을 벗어나면 공허하게 느끼고 무기력하게 만든다.

스마트폰이 없던 이전을 생각해 보면 아이들은 재밌게 놀았다. 동네 친구들이 무리 지어 놀고, 놀 친구가 없으면 혼자 공상에 잠기거나 가상의 캐릭터를 만들어 놀기도 했다. 스스로 상상력을 자극하면서 놀았다.

10대 시절을 보면 라디오 프로그램이 참 인기가 있던 시절이었다. 스피커로 나오는 DJ의 목소리는 10대 소녀들의 마음을 설레게했다. 사연이라도 보내면 자기 사연이 읽힐까 초조하게 기다리던 설렘의 시간도 경험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사연 속 인물을 상상하기도 했다.

책상에 앉아서 또는 이불을 덮고 엎드린 채 이런저런 생각을 끄적이기도 하고 시를 적기도 했다. 재밌는 책에 꽂이기라도 하면 책을 보다 잠들기도 했다.

심심하면 공부를 더 하기도 했다.

스마트폰은 우리의 진짜 삶을 빼앗아가고 있다. 밤늦은 시간까지 블루라이트 불빛 속 세상을 보며 도파민에 심취해있는다. 뇌는 과 각성 상태에 접어들어 숙면을 취하지 못하고 다음 날은 왠지 피곤하다. 피곤하면 짜증 나고 귀찮고 우울하다. 활동이 줄어들고, 의욕이 떨어져 사람들과 어울리기도 싫다. 그럼 다시 스마트폰으로 무료함을 달래고 도파민에 빠져든다.

낮 동안에 스마트폰은 우리의 집중력을 계속 갉아먹고 있다. 알림 소리에 폰을 보고, 뭔가 중요한 소식이 새로 온 게 있나 또 열어 보고, 잠시 머리를 식힐 겸 또 스마트폰을 열어본다. 그러다 쇼츠나 릴스에 빠져 10분 아니 30분 이상 시간을 흘려 보낸다.

온전한 집중력은 찾으려야 찾을 수 없다.

“아이들이 너무 스마트폰에 빠져 있어요” 라고 부모들이 말한다. 정작 본인들도 스마트폰에 중독되어 있는데 그걸 알지 못하고 아이들만 걱정한다.

스마트폰의 굴레 너머를 보지 못하는 우리 삶의 모습이 언 듯 스쳐 보인 날이다. 왠지 짠하고 어린 시절의 모습이 떠오르는 날이다.